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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허송세월은 "치열한 허송세월에 깃든 격렬한 삶의 문장들"
소설가 김훈이 5년 만에 산문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글을 쓰며 치열하게 살아온, 이제는 "여기저기서 또래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늘그막의 세월"을 다시 치열하게 보내는 작가의 이야기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일산 호수공원을 자주 산책하며 쓴 단상, 새와 나무 이야기, 작가가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늙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슬픈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돈되지 않은 채로 그 늙음을 민낯으로 마주하고야 만다. 그러나 <허송세월>을 읽고 있노라면 잠시 그 두려움을 내려놓고 담담해진다. 단정하지만 강렬한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연약해진 마음속을 메워 세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결국엔 주고야 마는 것이다. "희망의 힘에 의지해서 살지 않고 이런 미완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글, 참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명문의 탄생이다.
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삭아드는 인생의 단계를 절감한다는 그가 “겪은 일을 겪은 대로” 쓴 신작 산문을 들고 돌아왔다.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돌아온 경험담,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의 유머로 승화해 낸 도구에 얽힌 기억, 난세를 살면서도 푸르게 빛났던 역사의 청춘들,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온갖 냄새에 이르기까지, 그의 치열한 ‘허송세월’을 담은 45편의 글이 실렸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아는 이로서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생활의 정서를 파고든 《허송세월》은 김훈 산문의 새 지평이다.
허송세월 - 초판한정 김훈 문장 엽서
지은이 김훈 나남 출판사
1948년 5월 5일 서울특별시 태생이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2년 만에 영문과로 전과했다. 그러나 군 복무 뒤 가정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퇴했다. 군에서 제대하기 직전인 1973년에 아버지 김광주가 사망했는데, 어찌나 집안이 어려웠던지 묘지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김훈은 묘지 비용을 할부로 갚아야 했다.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 기자로서 활동하다가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의 언론사를 거치면서 기자로 활동해 왔다. 사표를 쓴 것만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무려 열 일곱 번이었다고. 1986년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여행 에세이를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이 첫 책으로, 1994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시작으로 소설로 옮겨갔다. 2001년 출간하여 현재까지 스테디셀러인 칼의 노래(동인 문학상 수상작)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 이후 출간하는 작품들마다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을 집필했다.
2002년부터 한겨레에 '거리의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접기 수상 : 2022년 동리문학상, 2013년 가톨릭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1년 동인문학상 최근작 : <허송세월>,<언니의 폐경 姐姐的绝经期 Menopaŭzo de la Fratino>,<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책속에서
내가 즐겨 마신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새벽의 갈대숲에서 새들이 부스럭거리고 퍼덕거린다. 새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동네는 복 받은 동네다.
조사 ‘에’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다.
형용사를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삶에 닿아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삶을 향해서, 시대와 사물을 향해서, 멀리 빙빙 돌아가지 말고 바로 달려들자.
세상살이는 어렵고, 책과 세상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기는 더욱 어려운데, 책과 세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독서는 괴롭다.
암컷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 한없는 집중과 인내와 기다림. 새는 제 몸의 온도로 새끼를 깨워 낸다. 당신들과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달걀을 먹었던가.
심장은 목적지가 없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심장은 언어나 논리가 세계를 규정하지 않는 곳을 향해서, 엔진을 벌컥거리며 가고 있었다
햇볕 속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물어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네 머리통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햇볕에 냄새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생활은 크구나, 라고 글자 여섯 개를 썼다.
P. 38~39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중략) 늙으니까 혼자서 웃을 수밖에 없고 혼자서 울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은데, 웃음과 울음의 경계도 무너져서 뿌옇다. 웃음이나 울음이나 별 차이 없는데, 크게 나오지는 않고 바람만 픽 나온다.
P. 142
나는 인쇄된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한 생애가 강물같이 흐름을 이루지 못하고, 파편으로 부스러져 있다. 삶을 구겨 버리는 그 무질서가 아무리 진지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려는 과장된 어조와 단정적 서술을, 이제 견디기 어렵다. 책값을 내고 이걸 사서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이 자학적 수치심은 오래된 고질병인데, 증세는 악화 중이다.
P. 34
복도에 대기자가 많으면 김 아버님 박 아버님이라고 불러댄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모욕을 느끼지만, 아프니까 별 수없이 병원에 간다. 내가 젊은 간호사를 ˝딸아˝ 하고 부르면 나를 미친 늙은이로 볼 것이다. - 아시마
P. 43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 소개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 버텨 내는 생로병사의 무게
시대의 눈물과 웃음을 포착한 성실한 글쓰기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_〈늙기의 즐거움〉, 7쪽
소설가 김훈이 산문 《허송세월》로 돌아왔다. 종이에 선명하게 찍힌 첫 문장에서 감지되듯 그는 죽음마저 일상적 루틴으로 여기는 ‘글 쓰는 실무형 노동자’다. 어느덧 여든에 가까워졌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 오래고도 성실한 노동의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_〈재의 가벼움〉, 54쪽
노년에 접어든 후 술과 담배에 품게 된 애증의 감정을 털어놓은 서문 ‘늙기의 즐거움’을 지나쳐 1부 ‘새를 기다리며’를 펼쳐들면, 김훈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14편의 글이 기다린다. 심혈관 계통의 질환 때문에 그간 크게 아팠다고 고백하며 그는 말 그대로 “신체 부위와 장기마다 골병이” 든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떤 것인지 자조하고, 몸이 완전히 사그라들어 마침내 뼛가루가 되기 전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지 고심한다.
이렇듯 입원실에 누워 오줌통에 소변이 고이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애환은 자연스럽게 생로병사의 무거움을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나마 버텨 내야 하는 중생의 고단함에 대한 반추로 이어진다. 일산 호수공원에 앉아 햇볕을 쪼이며 노년의 나날을 보내는 그는 자신의 말이 이 고단함에서 벗어나 삶의 맨 얼굴에 닿기를 꿈꾼다. 그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에 바쁘다는 그가 2부 ‘글과 밥’에서 눈을 돌리는 곳은 다시금 “밥벌이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지고 볶는 일상”이다. 일찍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던 그에게 먹고사는 일의 애달픔을 정확히 포착하는 글쓰기는 평생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는 “웃자라서 쭉정이 같고, 들떠서 허깨비 같은 말”을 버리고 필요한 말만을 부림으로써 언어를 삶의 한복판에 밀착시키고자 한다. 글 쓰는 이와 모국어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리는 허약한 품사를 과감히 쳐 내고, 사물을 향해서 “빙빙 돌아가지 말고 바로 달려들”기 위함이다.
“쓰이기를 원하는 것들과 남에게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날에는 더욱 문장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런 날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끼어들고, 등장인물의 말투가 들뜨고 단정적 종결어미가 글 쓰는 자를 제압하려고 덤벼든다. 글이 잘나가서 원고 매수가 늘어나고 원고료가 많아지는 날이 위험하다. 이런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공원에 놀러 나가기 전에 글 속에서 뜬 말들을 골라내고 기름기를 걷어 낼 때에는 남이 볼까 무섭다.” _〈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143쪽
필요한 말만을 정확히 부리려는 노력은 삶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박한 물건들에 애정을 보이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박물관에서 가야토기의 “어둡고 서늘”한 구멍을 들여다보며 그는 신라의 철제 무기에 스러져 간 가야 옹기장이들의 비애를 생각한다. 반면 생활 속 쓰레기가 일상의 연장이 되어 돌아온 똥바가지를 보면서는 “펄펄 살아 있던 활물”에 신명이 뻗치기도 한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한” 이 물건들에서 들려오는 듯한 “순하고 과장 없는” 단순한 말들이 그의 산문 언어가 향하는 지향점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나는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므로 우선 밥을 먹는 일에 관련된 유물들을 들여다보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볼 수는 없었다. 절구, 맷돌, 항아리, 젓독, 김장독, 장독, 술독, 밥그릇, 국그릇, 주전자, 접시, 쟁반, 냄비, 뚝배기, 보시기, 탕깨(탕기)들이 끝이 없었다. 한없는 물건들은 제가끔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표정들의 일관된 질감은 사람의 일상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것들이 지니는 단순성과 현실성이었다.” _〈박물관의 똥바가지〉, 179쪽
3부 ‘푸르른 날들’에 다다르면 작가는 시선을 더 멀리 두어 난세를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이들에게로 관심을 뻗친다. 다윈과 피츠로이,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 안중근의 청춘이 그의 문장에서 교차되며 떠오른다. 이러한 호명은 방정환, 임화, 최인훈, 박경리, 백낙청, 신경림…으로 이어진다.
“〈농무〉가 보여 주는 울분과 소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표정은 맑고 선하다. 눈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은 천진성의 바탕을 보여 준다. 이 순간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본질을 보여 준다. 무엇을 기필코 보아야 한다는 의도가 없다. 물러서 있는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보았다. 그 순간이 보였다. 이날 눈송이는 굵었다. 사진 속의 신경림은 아마도 눈이 내리는 것이 좋아서 웃고 있는 것 같다.” _〈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운구〉, 264쪽
서늘한 시대를 살면서도 푸른 날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근심과 희망이 남은 자리를 성실하게 더듬어 가던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지금 여기’의 중생고로 향한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끼여 죽고, 깔려 죽”었던 수많은 이웃의 죽음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두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뿐이다.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말들로 들끓는 화세에, 말하기 어렵고 듣기 괴로운 세상에 몸서리치면서도 그의 문장은 꿋꿋이 나아간다.
“의견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듣기의 헛갈림은 시작됩니다. 아마도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언어의식 밑에 깔린 잠재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기의 어려움입니다. (…) 근거 없고 쓸데없는 헛소리를 한자로는 화(譁)라고 씁니다. 온 세상에 말의 쓰레기들이 물 끓듯 들끓는 모습이 화비譁沸이고, 그런 세상의 이름은 화세(譁世)입니다.” _〈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89쪽
늙어 가는 일의 즐거움을 논하는 글로 운을 떼어, 도로변의 투명 벽에 부딪쳐 죽는 새들과 철모를 남기고 간 옛 병사를 향한 헌사로 닫는 45편의 산문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에 포박되어 있던 가엾은 중생의 말에 바치는 송가다. 꽃과 새와 밥과 꿈에 뒤엉킨 이 시대의 기쁨과 슬픔을 애달프면서도 때로는 웃음기 있게, 명료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언어의 짜임이 눈부시다.